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위험한 사상! 오직 여호와, 오직 예수(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

강성 회교국가에서는 지금도 알라와 마호메트, 코란 등을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회교 열성 신도들 손에 의해 살해당할 수 있다. 고의든 실수든 누구든지 이슬람교의 국법에 따라 신성모독죄를 범하면 체포되어 사형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도 그런 종교적 살해사건을 크게 문제삼거나 개입하여 조사하지도 않는다.

 2000년 전 유대교에서도 누구든지 신성모독죄에 걸리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하신 바와 같이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라는 이름 외에는 그 누구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었다. 유일한 구원자는 오직 신령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기에 하늘에 계셔야 할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구원자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다 아시면서도 왜 오해받을 발언과 무지한 백성들의 위험스런 공격을 감수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30~33)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성육신을 인정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모함하고 핍박하면서 십자가에 처형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서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떠한 신앙적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1~12)

구원자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구원자 예수라는 이름으로 바뀐 지 2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라는 이름에서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바뀐 지 벌써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새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늘 구름만 쳐다보며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2000년 전 유대나라의 니고데모가 밤에 남의 이목을 피해서 예수님을 찾아뵙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꼭 하나님의교회를 찾아오기 바란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위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모두가 이름 때문에 빚어진 사건임을 알 수 있으리라. 회교의 알라와 마호메트, 성부시대 유대교의 여호와, 성자시대 기독교의 예수님, 성령시대 성령의 이름 곧 새 이름 안상홍님 등 과거 유대인들처럼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말을 하고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명심하는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을 알기 위해 성경에서 확인하고 배우고자 힘쓸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이는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이 한 말인데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다수의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이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던 신흥종교 단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인간적인 존경심을 갖는다. 사도 바울도 한때 가말리엘 교법사의 문하생으로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다가 회개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던 인물이 아닌가?

사상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유혈혁명이나 순교, 전쟁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사상이 아니던가? 공산주의 사상이나 유교사상, 불교사상 또는 민주주의사상, 자본주의사상은 다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기에 완벽하거나 영원할 수 없고 모순도 부작용도 많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건설되었다가 사도시대 말기 후 종교암흑세기 동안에 악한 자들에 의해서 완전히 훼파된 것을 원상복구 재건하여 다시 전 세계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시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존자가 친히 육체로 재림하셔서 세우신 시온을 누가 감히 또 무너뜨릴 수가 있단 말인가?(시 102:16, 시 87:5)

시온은 절기 지키는 곳이다(사 33:20). 절기 지키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교회뿐이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오직 회개하고 성령과 신부에게 돌아오는 길만이 살 길이다. 아직도 오직 여호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오직 예수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오직 누구만을 고집하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목격했다면 이제는 성경을 제대로 살펴보고 성령과 신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중에서

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을 증거하는 안증회, 하나님의교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점(하나님의교회, 안증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을 대했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예수)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33)

아버지(여호와)와 하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대답이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올 수 없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뇌리 속에 박힌 사상이자 고정관념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라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예수)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8-19)

이(예수)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 13:55)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이 유대인의 특징이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유대인과 180도 달랐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전했다. 시몬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입니다”며 고백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귀히 여기고 영접했다. 똑같은 예수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70억 명의 인구 중 약 30억 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과연 그중 몇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혹 유대인의 사상이 박혀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의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다시 한번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씀에 대해 30억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는 사람으로 오셨으나 거룩한 분이심을 믿습니다”며 고백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유대인인가, 그리스도인인가.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복음은 새언약이다-하나님의교회에서 전하는 새언약

오늘날 모든 교회는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복음=복된 소리
사도바울은 복음=새언약임을 증거하고 있다
엡3:7 복음을 위하여 ...내가 일꾼..
고후3:6 우리로..새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한가지 일을 하는 한사람의 사도바울을 복음의 일꾼이라고도 하고 새언약의 일꾼이라고도
한것은 복음이 곧 새언약이기 때문이다
이 새언약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유월절 만찬식에서
눅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복음이나 새언약은 모두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때에 가르쳐 주신 교훈이다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그곳엔 반드시 새언약 유월절이 있어야 한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안상홍님 하늘어머니를 증거하는 하나님의교회-해로운것은 과감하게 버리라


매일 사용하는 칫솔은 어느새 벌어져 깨끗이 닦이지도 않고 잇몸에 상처를 남길 만큼 나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새 칫솔이 없는 터라 오늘도 헌 칫솔을 집어 든다. 오늘만 사용하자 한 것이 벌써 한 달째다. 헌 칫솔을 과감히 버렸다면 새 칫솔을 잊지 않고 사왔을 텐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버리지 못한 미련함 때문이다.

내게 해가 되는데도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요일 예배의 뿌리는 성경이 아니다. 그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신 숭배의 날에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정치적으로 접목시킨 니케아 종교회의(AD 325년)와, 토요일 대신 일요일 성별을 불법 제정한 라오디게아 종교회의(AD 364년) 등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그 주범이고 뿌리라는 사실을.”

어느 신문에 실린 광고다. 광고를 낸 사람은 목사 한 모 씨다. 그는 오늘날 교회에서 매주 지키는 일요일예배의 불법성을 교회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냈다. 그리고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던 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도들의 행적을 근거로 제시하여 타당성을 더했다. 그는 “토요 안식일예배가 성경에 있으면 그 진실은 지켜야 하고 일요 태양일 예배가 성경에 없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토요 안식일예배를 과감히 시도하시되 우선은 일요일예배와 병행하면서 점진적으로 제4계명 회복운동을 확대해 나가십시오.”

안식일예배와 일요일예배를 병행하며 지키는 것. 얼핏 들으면 진리의 개혁처럼 보인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도둑질은 불법이라고 가르치면서, 상황에 따라 도둑질을 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마 13:41)

하나님을 믿고도 지옥 가는 사람이 있다.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낼 만큼 믿음이 출중하다 해도 불못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한 모 목사는 일요일예배를 불법이라고 시인했다. 이는 일요일예배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예배와 안식일을 병행하며 지키라는 것은 구원을 포기하라는 의미다.

안식일 예배를 지키려면 불법부터 과감히 버리라. 혹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이유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일요일예배를 부여잡고 있다면 이 얼마나 미련한 모습인가. 내게 해로운 것은 과감히 버리자.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망상에 빠진 기독교인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로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 40)
위에 인용된 성경말씀을 세분화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은 영생 얻기 위함이다.
2.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다.
3. 영생을 얻으려면 구원자 예수님께로 와야 한다.
4. 사람들이 영생 얻을 생각은 하지만 간절함은 별로 없다.
5.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핍박했듯이, 오늘날 안상홍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영적 핏줄은 유대인들과 다름없다.
6. 예수님을 배척했던 유대인들이 성경은 믿지 않고 지도자만 따라다녔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같은 맹종질병에 걸려있다.
성경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외할 뿐 마음은 하나님과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자시대 구원자와 성령시대 구원자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면 기독교인도 아니다. 구원자가 누군지를 모르는데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문제는 끔찍한 망상에 사로잡혀 '우리 목사님'을 구원자의 대변인으로 착각하고 무조건 아멘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8~9)
"예수천당 불신지옥", "믿기만 하면 구원", "우리 교회가 최고야", "우리 교회는 안 그래", "우리 목사님은 안 그래" 했던 끔찍한 착각과 망상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쉰다. 자신이 성경을 너무 몰랐다는 것과 이제까지 성경에 대하여 수박겉핥기 지식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기도 하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우리 목사님 말씀을 더 권위있게 믿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성경만 많이 읽으면 구원은 거저 얻는 줄 알았던 것이 큰 착각이고 망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과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음을 증거하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 아직도 성경의 용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의 무지와 망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안타깝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너무 생각이 짧고 단순한 사람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나빠서 멸망당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도저히 인간 목수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듯이 오늘날에도 성경을 믿지 않는 인생들에게 재림 예수님을 증거할 방법은 없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구원자를 알아보고 또한 구원자를 통해서만 영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관심도 없고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증거하는 안상홍님을 영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직도 착각과 망상에 사로잡혀 거짓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눈치조차 못 채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련하기 그지없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유월절 성만찬.. 성찬식 언제 행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어느 절기든 그 절기에 부여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표상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부활절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첫열매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불활을 기념하는 기쁨의 절기로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월절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이라고 기록하고있다

고전11:23~ 주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유월절)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이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만찬을 유월절에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부활하신 일요일에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그것도 아님 매주 예배때 마다 성찬을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부활적을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유월절에 성만찬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우리에게 중요한것은...(하나님의교회/안증회)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중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화려한 도시생활을 하는 언니와 시골에서 농촌생활을 하는 동생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생활을 비판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의 남편 파홈이 "우리 농부들은 땅만 넉넉하다면 악마나 다른 그 누구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며 편안하고 자유로운 농촌생활이 좋다는 아내의 말을 거들었다. 땅만 넉넉히 있으면 악마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파홈의 말을 듣고, 악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파홈에게 땅을 넉넉히 주고 그 땅으로 미혹하리라 결심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소유한 대지를 팔기 위해 내놓자 파홈은 그 동안 저축한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계약금을 치렀다. 농사가 잘되어 1년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게 됐다. 드디어 소원하던 땅 주인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그러나 다른 농부들의 가축이 땅을 침범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등 잡음이 생기자 파홈은 땅이 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마다 풍년이 되는 비옥하고 넓은 땅을 분양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재산을 팔아 고향을 떠나 이주했다. 그가 가진 땅은 이전의 세 배가 됐고 살림은 그전보다 열 배나 나아졌다. 차차 생활이 안정되고 살림이 불어나자 이곳 역시 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분양 받아 농사를 짓기 보다 영원한 자기 땅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적은 돈으로 일년이 걸려도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땅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곳은 바스키르 원주민들이 사는 땅이었다. 듣던 데로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땅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땅을 얻는 방법도 간단했다.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기하고 해가 지기 전에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표기한 모든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파홈은 시작점에서 출발해 마음에 드는 땅을 표기하며 걸어갔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놓치기 아쉬운 땅들이 있어 포기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힘껏 달렸다. 숨이 가파라 땅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언덕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통을 참고 계속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며 극적으로 시작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파홈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만 숨이 막혀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시골농부 파홈의 모습을 통해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표현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나는 파홈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필자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를 읽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어리석은 부자를 떠올렸다.

눅 12:16-20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눈에 보이는 부유한 삶을 위해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영혼을 위해선 아무런 준비도 못한 부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셨다. 애써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그 생명을 끊어지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눈 앞의 삶만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의 세계를 위해 살기를 원하신다. 

혹 당신은 지금보다 더 좋은 자동차와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등을 소유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다. 

왜 하필 십자가인가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던 것일까.
로마 시대, 살인자와 같은 흉악범에게 집행됐던 사형방법이 바로 십자가 형벌이었다.
그 만큼 십자가 형벌이 고통스럽다는 의미이며 유대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미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십자가 형벌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신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만큼, 유대인이 두렵고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없다.
그 형벌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받으셨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이런 치욕스러운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셨다. 왜일까.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자녀가 하늘에서 지은 죄의 대가가, 사망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죄에 대한 형벌,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육신의 죽음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고 알려준다.
영혼의 죽음이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지은 죄는 육신의 죽음도 모자라 영혼의 죽음까지 겪어야 비로소 벗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들의 죄를 대신 받으신 것(요 1:29)이다.
우리들의 죄가 켰던 만큼, 잔혹스러웠던 만큼, 용서받을 수 없었던 만큼,
예수님께서 받으신 형벌의 무게는 더해갔다.
십자가 형벌, 그것은 우리가 겪어야 했던 죄의 대가였다.

두렵고 혐오스러운 십자가 형틀.
그 형틀을 올려다보며 초대교회 성도들은 얼마나 가슴을 쳤으며 십자가를 증오했을까.
사랑하는 예수님을 지독한 고통을 당하게 한 사형틀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형도구에 입을 맞추고,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린다는 이유다.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행위다.
성경은 우상을 만들면 저주를 받는다(출 20:4~5)고 했다.
우상은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십자가도 포함된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린다는 이유로, 그의 말씀을 어기고 저주받는 우상을 만든다면 예수님께선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패스티브닷컴중에서..패스티브 닷컴

2012년 9월 7일 금요일

기약이 이르러 나타나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말씀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시며 역사를 주관하셨던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보이심으로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증명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되면 당신의 백성들은 왜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당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엘로힘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셨고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가를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예언으로서 이땅에 오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성령과 신부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두말씀을 비교하면 우리들은 엘로힘이신 하나님께서 기약이 이르러 나타나신 분이 성령과 신부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엘로힘(아버지 안상홍님 과 어머니하나님)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엘로히스트

엘로힘은 히브리어로 엘로아흐의 복수형으로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일반작으로 쓰였으며, 신양성경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헬라어 데오스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으로 알려주신 것에 대하여 혹자는 하나님의 신성의 풍부함이나 권능이 충만한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하며 혹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견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주장들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창조하신 사람의 형상을 통하여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 즉 남자와 여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모델로 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남성적 형상을 하신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을 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일깨워주신 가으침인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더할 것이 아니라 알려주신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2012년 9월 5일 수요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많은 교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교회'  율법주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여 주신 율법을 지킨다 라고 비방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폐하여진 구약의 모세의율법만 알고 십자가에서 완성시켜주신 새언약의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새언약의 율법도 알지 못하면서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받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수 없다
그러나 행함이 없이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을까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기만 하면 침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수 있겠는가
말씀을 통해 살펴볼때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믿는다 할지라도 침례를 받지 않으면 결국 그 사실을 믿지 않는자 인것이다

요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나라

당시 베드로가 예수님을 안 믿고 있었는가
그는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고 하셨다
예수님과 상관없는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수 있겠는가
이처럼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꼭 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마7:21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라야 들어가리라...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뜻대로 행하는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초림예수님께서 본으로 보여주시고 재림예수님 안상홍님꼐서 다시 찾아주셨으며 하늘어머니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계시는 생명의 진리들
안식일,유월절,침례, 등등..의 모든 하나님의계명, 완성된 새언약의 계명들이다
우리가 지키는 율법은 옛율법이 아니라 새언약 이며 새언약을 행하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다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2012년 9월 4일 화요일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아 오셨다

구약시대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에게 육적인 축복을 빌어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모두 짐승의 피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오직 멜기세덱 만큼은 떡과 포도주로서 하나님께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초림예수님께서 이러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오신 대제사장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초림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였습니다
그 당시 모든 제사장들은 유월절에 양이나 염소로 유월절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새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셨습니다

성령시대 등장하실 재림예수님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오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멜기세덱을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
멜기세덱의 제사방법을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오직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빌어 주신분은
아버지 안상홍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안증회)

어떤 사람들은 성령은 무형의 활동력일 뿐이며 성부와 성자처력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하여 성령시대에 육신으로 임하신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마28:19)만약 성령이 인격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 성령에게 이름이 있을 수 있겠는겠습니까?
이름이 있다는 말씀만으로도 성령은 무형의 활동력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령은 성경에서 감정을 지니시고 말씀도 하시고 근심도 하시고 생각도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도 해 주시며 심지어는 사람이 성령을 속이려고 까지 한다고 알려 주시고 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성부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성령으로 계시다가 때가 되었을때 사람의 육체를 입으시고 예수님으로 오셨으며, 이땅의 사역을 마치시고 다시 본래의 성령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그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믿음의 목적과 약속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빋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성경은 일깨워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영혼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기에 구원이 필요한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하나님께 지은 죄로 인하여 사명선고를 받았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영혼이 받아야 할 구원은 당연히 영생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 , 영생은 우리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얻을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 사망이 왔으므로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생을 주시겠다는 구원의 약속과 계획을 친히 세우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획을 알고 순종할 때 비로소 믿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6천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간을 세시대로 나누시고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의 구원자가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들의 구원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구원자를 믿고 영접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령시대의 구원자로 임하여주신 안상홍님...